TT-Sophy | 탁구와 철학(6) / 전대호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왜 왼손잡이 탁구선수가 많은 것일까?
 
어릴 적에 처음 보는 어른과 밥을 먹으면 꼭 한 소리 듣곤 했다. 내용도 표현도 한결같았다. “장가들어 처가에 가서도 왼손으로 젓가락질 할 테냐?” 그렇다. 필자는 왼손잡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젓가락질과 글씨 쓰기를 배우던 70년대 중후반에 왼손잡이는 교정이 요망되는 소수자였다. 왼손잡이의 설움은 왼손잡이가 아니면 잘 모른다. 영화배우 황정민이 어느 라면 광고에서 능숙한 왼손 젓가락질로 면발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필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친구도 어릴 때 잔소리깨나 들었겠군.”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왼손잡이 비율은 5퍼센트 남짓이라 한다. 95퍼센트의 오른손잡이와 5퍼센트의 왼손잡이. 왼손잡이를 소수자로 부르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전 세계 모든 공구와 문자는 오른손잡이용이다. 심지어 육상트랙의 방향도 오른손잡이에게 편하도록 정해져 있다. 왼손잡이는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더 편하고, 글씨도 왼손으로 쓰려면 문자를 거울에 반사시킨 모양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것이 더 편하다.
  그런데 의외로 스포츠계에는 왼손잡이가 1/20의 비율보다 훨씬 많다. 특히 상대와 맞서서 겨루는 종목인 펜싱, 권투, 테니스 등에서 그렇다. 한국 탁구에서는 어떨까? 오랫동안 탁구를 취재한 한 전문가에게 문의하니, 한국의 등록 선수 가운데 왼손잡이는 대략 25퍼센트 정도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국 엘리트 탁구 팀 하나는 평균 6~8명의 선수로 이루어지는데, 거의 모든 팀이 왼손잡이 선수를 한두 명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전체 인구에서의 왼손잡이 비율 5퍼센트와 비교하면 다섯 배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다.
  왜 그럴까? 혹시 왼손잡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탁구에 유리한 자질을 타고나기 때문일까? 이를테면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발놀림이 더 빠르거나 눈썰미가 더 예리하거나 머리가 더 좋아서일까? 실제로 그렇다면, 기죽은 채 유년기를 보낸 왼손잡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요 통쾌한 반전이겠지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사이에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 압도적인 정설이다.
  그렇다면 왜 왼손잡이 탁구선수가 많은 것일까? 간단명료한 대답은 희소성 때문이라는 거다. 왼손잡이와 경기할 때 오른손잡이는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최고 수준에 오르지 못한 오른손잡이라면 경기 내내 적응을 완료 못할 수도 있다. 반면에 왼손잡이는 거의 늘 오른손잡이를 상대하므로 오른손잡이에 대해 따로 적응할 필요 없이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러니 단순비교로 말하자면 왼손잡이가 이길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 세계를 제패했던 왼손잡이 선수 유남규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김택수.

희소성의 혜택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왼손잡이의 강점은 타고난 특이성이다. 왼손잡이의 서브는 특이하다. 상대는 평소에 경험한 회전의 반대 방향으로 도는 공을 받아내야 한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선수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권투에는 ‘변칙 복서’라는 것이 있다. 잽을 날리듯이 스트레이트를 두세 번 연속 뻗는다든지, 한 손으로 상대를 감싸 안으면서 다른 손으로 어퍼컷을 올린다든지 소위 ‘정통’에서 벗어난 희한한 동작을 구사하는 권투선수를 그렇게 부른다. 비유하건대 왼손잡이 탁구선수는 예의 특기들을 따로 연마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변칙 선수인 것이다.
  팀에 왼손잡이 선수를 꼭 보유하고자 하는 탁구코치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왼손잡이는 특히 단체전에서 요긴할 것이다. 상대편에 샛별처럼 떠오르는 신예 오른손잡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 선수는 비록 경험은 적지만 기량은 감탄할 만한 수준이다. 당신이라면 그 선수의 상대로 누구를 내보내겠는가? 당연히 우리 팀의 노련한 왼손잡이가 적격이다. 상대방은 몇 번 경험해보지 못한 왼손잡이의 특이성과 변칙성 앞에서 쩔쩔매기 십상일 것이다. 왼손잡이의 존재는 상대 팀 지도자의 전략에도 혼선을 줄 수 있는 히든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왼손잡이의 변칙성과 특이성만으로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세계 정상에 올랐던 왼손잡이들은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덩야핑 이후 여자탁구 최강자였던 왕난 등이 있다. 현재 여자 세계챔피언인 딩닝도 왼손잡이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정상에 올랐던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도 기억할 만한 김택수, 오상은, 유승민, 양영자, 현정화 등은 모두 오른손잡이다. 남자 세계챔피언을 대물림하고 있는 류궈량, 공링후이, 왕하오, 장지커, 마롱, 마녀로 불렸던 덩야핑과 장이닝도 다 오른손잡이다. 그래서 왼손잡이 비율 25퍼센트가 최고 수준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면 대체로 합당하다고, 앞서 언급한 전문가는 말했다. 이는 곧, 왼손잡이의 변칙성과 특이성이 최고 수준 선수들 사이에서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칙성과 특이성이 그런 것 같다. 바둑엔 ‘묘수 세 번 두면 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때 묘수란 변칙적이고 특이한 수를 뜻한다. 가장 강한 행마는 지극히 평범하다. 철학에서도 진리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배운다. 탁구에서도 가장 강한 기술은 상대를 비롯해서 모두가 아는 기술, 그런데도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기술일 것이다. 왼손잡이 선수는 타고난 특이성과 변칙성의 혜택에 안주하지 말고 평범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 현재 세계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남녀 왼손잡이 선수 쉬신과 딩닝. 하지만 이들이 정상에 있는 이유가 왼손잡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Tip | 왼손잡이가 유리한 종목
프랑스 몽펠리에대 미셸 레몽 교수(발달생물학)는,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펜싱, 복싱, 탁구, 테니스 등 마주 보고 하는 경기에서 왼손잡이 비율이 특히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펜싱은 33%, 복싱은 21%, 탁구는 19%, 테니스는 16%가 왼손잡이였다는 것이 레몽 교수의 조사 결과였다. 특히 1979년부터 14년간 펜싱 세계대회 4강에 오른 선수 중 50%가 왼손잡이였다고 한다. 왼손잡이인 한국 펜싱스타 남현희도 “오른손 상대는 왼손잡이를 만나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로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반면 육상 투척 종목은 10.7%, 축구 골키퍼는 9.6%로 일반인과 비슷했다. 레몽 교수는 “왼손잡이는 희소성 덕분에 상대가 까다로워한다”고 설명했다. (월간탁구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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