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 탁구 외교 첫 장, 화려한 장식 -

 

행사준비

한국탁구 사상 처음이면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며 치르게 된 핑퐁잔치에는 행사요원만 1천명 이상이 동원됐다. 탁구의 챔피언국다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조직위원회는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또 기했는데, 농담과 과정을 조금 섞어 말한다면 그 준비과정은 좀 부산스러웠을 정도였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외국선수단은 전원이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세계 각국에서 특별 초청한 VIP 임원들은 신라호텔에 투숙시켰다. 이들은 잠실 종합체육관까지 수송하기 위해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왕복 26편씩 52편의 셔틀버스를 운영하도록 준비했다. 대회가 열리는 잠실 종합체육관에는 15대의 탁구대를 설치, 15게임을 동시에 펼침으로써 신속한 경기진행이 가능하게 했으며 부대시설도 완벽하게 준비했다.

취재를 위해 몰려들 각국 기자들을 위한 텔렉스가 설치된 외신기자실 및 프레스룸을 마련했고, 선수 및 관계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워커힐 호텔에서 파견된 주방요원들의 간이식당을 운영하는 외에 곳곳에 커피 등 음료수를 판매하는 자동판매기도 설치했다. 특히 선수들을 위해서 본 대회장 옆 보조경기장에 7대의 연습용 탁구대를 설치했고 선수대기실엔 휴식용 침대까지 들여놓았다.

또한 체육관 본부석 건너편에 설치된 대현 전광판을 이용, 개회식시 알파벳 순서에 따라 입장하는 선수단의 모습을 소개하도록 했으며, 전광판에 나타날 영상으로는 해당국을 상징하는 갖가지 동물과 문화재 또는 국화를 등을 그렸다. 제일 먼저 입장하는 호주선수단 입장 때는 호주 영문국명과 함께 캥거루가 그려지도록 했으며, 주최국 한국은 대형 무궁화가 그려진 가운데 흰색과 곤색 유니폼 차림으로 맨 나중에 입장, 관중들의 환호를 받도록 했다.

또한 35명의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현란한 색채의 한복을 곱게 차려 입히고 경기장 및 호텔 공항 등에서 안내를 하도록 했다. 어느 경기를 막론하고 국제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선수단과 관중들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기념품 판매대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오픈전이 열리는 잠실 체육관 입구에도 간이 판매대를 설치, 기념 뱃지에서부터 손가방, 티셔츠, 미니라켓, 탁구화 등 30여 종의 기념품들을 준비시켰다.

그밖에도 대회 조직위원회는 3개 TV 방송국으로부터 1천 8백만원을 받고 중계권을 주고, 8월 26일 하오 2시부터 개회식과 공개행사를 합동중계하고 27일과 29일에는 남녀단체전 결승전과 남녀단식 결승 등 하이라이트를 중계하도록 했다. 또 국립영화 제작소도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당시 대회를 60분짜리 컬러 홍보 문화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각국의 통역은 경희대, 서울대, 연세대, 외국어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6개 대학에서 남자대학생 20명과 여자대학생 13명 등 모두 33명을 특별 선발했는데, 이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6개국 주요 외국어는 물론 인도네시아, 미얀마어 등도 자유로이 구사, 대회를 치러나가는데 손색이 없도록 준비했다.

탁구대는 국제적 탁구용품 회사인 일본의 다마스사 제품인 버터플라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20대를 면세 수입했는데, 그 중 12대는 다마스사로부터 기증받았다. 이밖에 기록 및 홍보자료 통계를 위한 행정요원의 훈련지도 실시, 그간 본 대회를 위해 배출한 80여명의 국제심판들에 대한 사전 교육 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화려한 개회식

제1회 서울오픈 국제탁구선수권대회의 개막식이 1980년 8월 26일 오후 2시 잠실 실내 종합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 2만여 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펼쳐진 이날 개회식은 호주 선수단을 선두로 36개국 340여명의 선수단이 알파벳 순서대로 차례차례 입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 제1회 서울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 36개국 3백 3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국민의례가 끝난 후 조상호 대한체육회장의 개회선언이 있었다. 최원석 대한탁구협회 회장 겸 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국제오픈으로는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제탁구연맹 회원국 간의 친선과 우의를 도모하고, 평소 연마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훌륭한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이번 대회가 정치 이념을 초월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박충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규호 문교부 장관이 대독한 치사에서 “국제적 체육대회는 이념과 종교, 민족과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친선을 도모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에 답하여 로이 에반스 국제탁구연맹 회장은 축사를 통해 “이 대회를 발판으로 한국이 가까운 시일 안에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상천 서울특별시장은 로이 에반스 회장에게 행운의 열쇠를 기증했으며, 이어 한국 국악예술학교 학생 82명이 펼치는 흥겨운 농악, 각국 의상을 차려 입은 서울여상 학생들 2백여 명의 포크댄스, 동두천 여상의 고적대 퍼레이드 등 다채로운 공개행사를 펼쳐 많은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특히, 78년 세계 사격선수권대회, 79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등 많은 국제대회에서 농악이 공개행사의 서막을 장식했지만, 이날 한국 국립예술학교 학생들이 보여준 솜씨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이 에반스 회장은 어린 소녀들이 소북을 두드리며 긴며리 띠로 원을 그리자 부인과 함께 쉬지 않고 박수를 보냈으며, 선수석에 자리 잡은 각국 선수들도 “원더풀 코리아!”를 연호하며 감탄을 숨기자 않았다.

 

세크래탱.퓨르까르 탁구쇼

탁구쇼의 1인자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쟈크 세크레탱(프랑스)이 개회식과 공개 행사가 끝난 후 동료 빈센트 퓨르까르와 함께 약 1시간 동안 탁구의 묘기와 진기를 선보였다. 세크래탱은 퓨르까르와 함께 무언의 팬터마임을 보여주듯 여러 가지 제스처로 2만여 명의 관중들을 웃겼는데, 강 스매싱을 코트 밖으로 뛰어나가 받아내는가 하면 갑자기 탁구대 위로 뛰어올라가 리시브를 하기도 했다.
 

 
▲ 프랑스의 세크래탱과 퓨르까르 선수가 신기의 탁구쇼를 선보여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또 퓨르까르는 볼이 얼굴에 맞았을 때 라켓의 러버를 떼어내자 그 안에서 거울고 빗이 나와 그것들로 얼굴를 매만지는 쇼를 벌여 관중들을 요절복통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리비스하다 갑자기 라켓이 뽑혀져 작은 테니스 라켓처럼 되면서 볼을 치기도 했으며, 스매싱을 뒤로 돌아서며 받아 올리던 퓨르까르가 탁구대 위로 올라가 눕자 세크래탱도 같이 올라가 누워 랠리를 계속하여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또한 별안간 볼이 없어져 한참을 찾자 자기의 라켓에 볼이 붙어있는가 하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탁구 치는 연기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세크래탱이 수저만한 라켓으로 강한 스매싱을 퍼붓고 퓨르까르가 보통 라켓보다 4배나 큰 라켓으로 리시브하는 모습은 탁구쇼의 하이라이트를 이뤘다. 탁구규칙에는 라켓 크기의 제한이 없다.

그밖에도 세크래탱과 퓨르까르는 탁구대 정리 시간을 이용하여 폭 30cm 길이 60cm의 초미니 탁구대에서 플레이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탁구쇼의 묘미를 보여줬다.

탁구쇼가 끝난 후 세크래탱은 “5년 전부터 일반인들의 탁구에 대한 흥미를 돋우고 탁구보급을 위해 탁구쇼를 시작, 세계 30여 개국을 순방하면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탁구쇼와 플레이는 다르다.”고 표현한 그는 “이번 서울오픈대회에서 전 종목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세크래탱은 그해 31세로 공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파리에서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는 미남으로 명성이 높았다. 6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 세계 각국을 거의 안 가본 곳이 없다는 그는 미모의 약혼녀 르르아 양과 함께 왔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마냥 즐거워했다. 그는 1977년 버밍엄 세계대회 혼합복식 챔피언이었는데 그가 우승하기까지는 한국의 이상국.이기원 조를 준결승전에서 눌러 이겨야 했으므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더욱 강렬했다고 표현했다.

전해 평양 세계선수권대회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한 세크래탱은 “북한과는 천양지차인 한국인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20여 종류의 별난 라켓이 들어있는 마술 보따리를 풀어놓고 정성을 다해 탁구쇼를 보여준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여자단체전 한국 A팀 우승

▲ 여자부 단체전에서 우승하고 함박 웃는 한국 여자 A팀. 오른쪽부터 윤상문 코치, 김경자, 신경숙 선수.

제1회 서울오픈대회의 남녀단체전 패권은 스웨덴 A팀과 한국 A팀이 각각 차지했다. 여자단체전에서 한국은 A팀이 준결승전에서 룩셈부르크를 3대 1, B팀이 태국을 3대 0으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 우리끼리 자웅을 가린 끝에 이수자, 김경자가 활약한 A팀이 안해숙, 신경숙, 황남숙으로 팀을 이룬 B팀을 3대 0으로 완파해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 단체전에서는 스웨덴 A팀이 한국 B팀을 3대 1, 프랑스가 한국 A팀을 역시 3대 1로 꺾고 결승에서 만나 스웨덴 A팀이 프랑스를 3대 1로 격파, 첫 패권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A, B팀은 4강이 겨루는 준결승까지는 무난히 진출했으나 강호 프랑스와 스웨덴 A팀에 모두 패배하고 공동 3위를 차지했다.

 


 

한국, 개인전 3종목 휩쓸어

동 대회의 마지막 날 경기는 잠실체육관이 아닌 장충체육관으로 옮겨 실시되었다. 8월 31일에 열릴 예정이던 제11대 대통령 선출 장소가 바로 잠실종합체육관이었고 그 준비를 위해 체육관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진행임원들은 밤새도록 모든 장비를 장충체육관으로 옮겨 새롭게 세팅을 해야 했다. 간선제로 대통령을 뽑던 암울한 시절에서나 있을 법한 웃지못할 에피소드였다.

어쨌든 한국은 동 대회 마지막 날 치러진 여자단.복식과 혼합복식 결승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여고 신예 황남숙은 여자단식 준결승전에서 이수자를 3대 2로 꺾은데 이어 결승전에서도 김경자를 3대 0(21, 18, 15) 스트레이트로 격파, 우승했고, 신동현과 조를 이룬 혼합복식에서도 유시홍.이수자 조를 3대 1로 격파,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 한국이 독차지한 여자개인복식 시상식 장면. 왼쪽부터 2위 신경숙·식득화, 우승 이수자·김경자, 3위 박홍자·양영자, 안해숙·황남숙 선수.

한국 선수끼리 4강을 차지했던 여자복식에서는 이수자.김경자 조가 신경숙.신득화 조에 3대 1로 승리, 우승을 거뒀다. 손성순.신동현 조는 남자복식 준결승전에서 이상국.김기택 조를 3대 1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 프랑스의 세크래탱.제르노 조에게 첫 세트를 21대 15로 따내 승리의 고지를 향해 달리는 듯 했으나 내리 3세트를 빼앗기고 1대 3으로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탁구의 마술사로 불린 프랑스의 세크래탱은 스웨덴 트로셀과 남자단식 결승에서 격돌, 3대 1로 승리하면서 동 대회의 히어로가 되었으며 한국의 김완과 김기택은 준결승전에서 세크래탱과 트로셀에게 각각 패배, 아쉬운 공동 3위를 마크했다.

세크래탱과 트로셀의 남자단식 결승전은 묘기백출의 명승부를 연출, 4천여 관중을 열광시켰다. 트로셀은 범실이 잦아 제 3세트를 빼앗았을 뿐이다. 세크래탱은 이 승리로 단체전에서의 패배를 설욕, 명예를 회복했다.

세계 속의 한국 탁구를 심은 초청외교의 첫 장은 그렇게 화려하게 장식했다. 경기가 끝난 8월 29일 밤 신라호텔 다이너스티룸에서 열린 환송파티에서는 36개국의 임원 선수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한국의 따뜻한 우정을 가슴깊이 새겼다.

동 대회에 특별 초청을 받은 솔 쉬프 미국 탁구협회장과 라마누잔 인도탁구협회장 등 20여명의 국제탁구 요인들은 “그 많은 참가인원에도 무리 없는 대회 진행과 경기장 밖의 갖가지 행사를 훌륭하게 치러낸 한국탁구협회의 조직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격려했다. 첫 대회를 무사히 치른 탁구인들은 “한국 탁구는 앞으로 과감한 스포츠 외교로 양에서 질의 향상을 꾀하는 국제무대에서의 탈바꿈이 요청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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