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신동’ 신유빈의 ‘성장’

<피플&핑퐁>

신유빈(청명중학교 1학년)
‘탁구신동’ 신유빈의 ‘성장’

중1 신유빈(청명중)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지난달 있었던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파견 대표선발전에서 역대 최연소 주니어대표로 선발되며 ‘탁구신동’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벅찬 대회 일정 속에서, 더구나 수많은 고등부 강자들의 견제를 뚫고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놀라웠다. 지난 달 길었던 대회 시즌을 마친 직후 이 특별한 유망주를 따로 만났다. 유빈이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탁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제가 달라졌다고요?”
  중학생이 된 2017년, 유빈이는 말 그대로 ‘숨 가쁜’ 상반기를 보냈다. 두 차례의 중‧고연맹전과 두 차례(아시아, 세계선수권)의 대표선발전, 그리고 소년체전과 대통령기, 문체부장관기까지 전국 규모 대회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코리아오픈과 연이어 출전한 ITTF 챌린지(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아산에서의 아시아 주니어&카데트선수권 등등 국제대회들까지 감안하면 내내 치열한 경쟁 속에 있었다. 대회 사이사이는 다음 대회를 대비하는 훈련으로 채워졌으니, 이제 만 13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벅찬 날들 속에서 유빈이는 ‘또’ 많은 걸 이뤄냈다. 소년체전 단‧복식 전 경기 출전, 전 경기 승리로 금메달과 함께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중‧고회장기 대회에서 진학 이후 첫 단식 우승을, 문체부장관기에서는 복식을 첫 우승했다. 아시아 카데트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으며, 아산에서 열린 본 대회에서는 6년 만의 한국팀 단체 은메달을 이끌었다. ITTF 월드투어 21세 이하 단식 연속 8강(코리아, 슬로베니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고, 세계주니어선수권 파견 선발전에선 역대 최연소 주니어대표가 됐다. 중1 신유빈의 2017년 현재다!
  물론 패배도 경험했다. 중학교 첫 공식대회였던 중‧고종별 단식 8강전과 문체부장관기 단식 16강전에서 뜻밖의 좌절을 겪었고,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중국의 왕티안위에게 단체전과 단식에서 연패하며 예선 탈락하는 아픔도 맛봤다. 패한 뒤 코트를 나오며 유빈이는 몇 차례 진한 눈물을 보였는데, (나중에 유빈이의 설명에 의하면)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울었고, 왜 졌는지 모르겠어서, 또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도 눈물이 나왔다. 이유가 뭐였든 그런 눈물마저 없었다면 예의 숨 막히는 일정 속에서 지레 지쳐 넘어지고 말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중학교에 올라온 유빈이, 쉴 틈 없이 이어진 신유빈의 시합들을 본 주변의 어른들이 자꾸만 유빈이에게 “달라졌다”고 말하는 게 그거다. 요는 ‘유빈이가 예전보다 훨씬 열심히 한다’는 거였는데, 칭찬에 가까웠지만 그런 시선들이 유빈이는 오히려 당황스러운 듯했다. 사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왜 열심히 하느냐’고 물어보는 것만큼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있을까! 뭐가 달라졌지? 없는데? 간만의 휴가 중에 잡힌 마뜩찮은 인터뷰를 하다말고 유빈이는 거꾸로 반문을 해왔다. 제가 달라졌어요? 뭐가요?
 

▲ 유빈이의 가장 큰 변화는 경기 중의 ‘파이팅’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기에서의 모습이다.

‘변화’보다는 ‘성장’
  ‘신유빈’은 정말 달라진 걸까? 유빈이는 늘 또래 중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선수였다. 초등 교보컵 학년별 단식을 6년 내내 우승한, 현재까지는 유일무이한 선수다. 전국종별 역대 최연소(3학년) 우승 기록의 주인공이자, 가능한 나이(4학년)부터는 내내 호프스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종합대회에서 성인 선수를 꺾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카데트, 주니어, 성인무대 가릴 것 없이 간간히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는 구력도 체격도 비교할 수 없는 상대들과 당돌하게 싸웠다. 더 어릴 때부터 ‘신동’의 수식을 달고 다녔다 해도, 타고난 재질이 넘친다 해도 재능만으로 다 이룰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빈이는 이미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게 다른 선수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빈이에게 “달라졌다”고 하는 이유로는 이전보다 확연하게 적극성을 보이는 태도가 가장 먼저다. 좀처럼 ‘파이팅’을 외치며 스스로를 다지는 법이 없었던 유빈이는 랠리 직후 주먹을 굳게 쥐고 큰 소리로 기합을 넣는 모습을 요즘 자주 보여준다. (엄마 홍미선 씨에 의하면) 라켓에 러버를 붙이는 것부터 예전 같으면 아빠나 선생님이 해줬던 경기 준비도 이젠 스스로 챙긴다. 시합 전후 경기 비디오를 돌려보며 내용을 분석하는 것도 잘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런 것들이 변화라면 유빈이는 달라진 게 맞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변화’보다 ‘성장’에 어울린다. 유빈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도하는 황성훈 청명중 코치의 말이다.
  “중학교에 올라온 뒤 이전보다 강자들과 시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유빈이의 근성이 단단해졌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전에는 그냥 ‘탁구’를 했지만 이제는 이기기 위한 ‘승부’를 한달까? 여전히 보완할 것이 많지만 마인드가 깊어지고 진지해지면서 기술적으로도 빠르게 늘고 있다.”
  황 코치 말대로 중학교 진학 이후 유빈이는 환경의 변화를 먼저 체감하지 않으면 안 됐다. 팀에서의 훈련량도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고, 실전에서 만나는 상대들의 구질은 이전보다 확실히 묵직하다. 달라진 여건 속에서도 최고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환경은 유빈이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고, 이전에도 열심히 했던 유빈이는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노력이 더해지면서 탁구를 대하는 유빈이의 자세가 매우 진지해졌다는 게 바로 황 코치의 전언이다. 그 기간에 키도 한 뼘이나 더 자랐으니 외형적으로도 유빈이는 많이 ‘성장’했다(유빈이는 벌써 163cm를 넘어가고 있다).
 

▲ 지난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신유빈은 패배의 아픔을 겪고 진한 눈물을 흘렸다. 성장의 좋은 약이 됐다.

‘탁구신동’을 바라보는 시선들
  ‘탁구신동’ 신유빈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부러움의 시선도 있고, 시기가 어리는 눈길도 있다. 기대감 가득한 마음도 있고, 방관에 가까운 태도도 분명 있다. 여러 입장들 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유빈이를 이미 ‘완성된 선수’로 보는 시각이다. 따지고 보면 유빈이의 ‘천재성’은 노력을 결과로 끊임없이 증명해내는데 있다. 애초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늘 잘해왔고, 늘 주목받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할 것 같지만 (황 코치 말대로) 유빈이는 여전히 보완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은 어린 유망주다. 제 풀에 지쳐 일찍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곤 했던 숱한 ‘천재’ 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간혹 어린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닌 인터넷 ‘악플’이 달리는 경우가 있다. 뜻밖의 난적을 만나 고전하는(유빈이는 아직 핌플러버 전형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우라도 있으면 “신동이라면서 저 정도밖에 못 하냐”고 비아냥대는 현장의 소리도 들린다. 애써 좋게 본다면 모두 유빈이를 ‘완성형’으로 놓고 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들이다. 최근 유빈이의 긍정적 변화에 흥분했던 시선(기자를 포함해서)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애초부터 잘하는 유빈이가 마음을 바꿔먹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에 가깝다. 바뀐 환경에서 유빈이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노력했으며,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다행인 건 유빈이 스스로 (자기도 모르는 새) 그 과정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것. “전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말에 “항상 열심히 했다”고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도 곧 생긋 웃어 보이는 유빈이다. “생각해보면 전엔 지금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유빈이는 고등부 강자들의 견제를 뚫고 역대 최연소 주니어대표가 된 직후에는 이렇게도 말했었다. “대표가 된 것보다 잘하는 언니들을 이겼다는 게 더 신기해요.” 강한 상대들이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준다면,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또한 자명해진다. 그것은 물론 두려움 없이 환경에 녹아들 줄 아는 이 어린 천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일일 것이다.
  잘 지지 않는 유빈이는 경기에서 질 때는 곧잘 눈물을 흘린다. “지는 게 싫으면 주니어나 그런 시합 안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쯤 농을 섞어 물었더니 유빈이가 정색했다. “그렇게 이기는 것보다 이렇게 지는 게 낫잖아요.” 눈물은 눈물이고 탁구는 탁구다. “강한 상대하고 할 때 탁구가 재미있다”는 유빈이의 성장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 황성훈 코치는 네트 앞 세밀한 잔플레이에서부터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 회장기 대회 때의 모습이다.

유빈이의 꿈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유빈이의 꿈도 보통의 선수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빈이는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그게 젤 힘들고, 좋은 거 아니에요?” 취재진이 “정말 어려운 건 전 세계 선수들 다 나오는 세계선수권”이라고 부언하자 말을 바꾼다. “그럼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요! 그게 그건 줄 알았네.” 한참을 웃다가 기자가 먼저 유빈이 나이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예의 ‘완성형’ 선수로 놓고(오해하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뜻인데, 유빈이는 아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도 따로 구분해 생각해보지 않은 ‘어린이’였음을.
  탁구를 하지 않을 때는 ‘액체괴물 만들기’를 즐기고(인터넷을 검색해 보시라), 이제 막 아이돌 ‘오빠’들의 매력(유빈이는 ‘아이콘’의 팬이다)에 눈 뜨기 시작한 이 어린 소녀가 어떻게 탁구대 앞에만 서면 그렇게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것일까.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많은 이들의 ‘오해’를 부르는 데는 유빈이 스스로의 책임도 있는 셈이다. 흔한 말로 너무 잘해도 탈? 유빈이는 결국 “그냥 탁구를 제일 잘하는 게 꿈”이라고 결론 내렸다.
  앞으로도 유빈이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또 못하는 대로 다양한 오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껏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역사를 개척해가는 자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이미 수많은 관심과 기대에 단련된 유빈이가 (아빠 신수현 씨에 의하면) 주변 시선 이전에 스스로 ‘잘하고 싶은 탁구’에 집중할 수 있는 내성까지 갖춰가고 있다는 것은 그러니 또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점점 혹독해져가는 경쟁을 무리 없이 헤쳐 온 것처럼,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고비들을 극복해가며 또 그만큼씩 성장해간다면 유빈이는 언젠가 자기의 꿈대로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탁구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계속 강조한 것처럼 탁구신동 신유빈의 빠른 성장을 위해 끊임없는 자극을 행하는 일은 탁구계에 주어져 있는 몫이다. 2017년 현재, 주니어대표 신유빈은 중학교 1학년이다. 글_한인수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9월호)
 

▲ 유빈이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탁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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