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할름스타드 제54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단일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는 ‘아시안게임 공동 진출’에 대한 합의가 포함돼있다. 이에 앞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남측예술단을 인솔해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일국 북한 체육상과 아시안게임 남북공동입장에 합의한 바도 있다.
 

▲ 남북단일팀에 관한 한 최고의 기억을 갖고 있는 탁구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작은 통일’을 이뤘었던 코리아! 월간탁구DB.

이에 따라 이미 문체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성사를 위한 본격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하향식 일방 추진이 아니라 각 경기단체의 의견 수렴을 선행하고 있다는 것.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정부가 일방 추진한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방식에 제기됐던 비판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 그리고 바로 이들! 이분희-현정화 복식조. 월간탁구DB.

단일팀 구성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탁구협회는 물론 ‘긍정’ 답변을 냈다.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단체는 현재까지 탁구를 포함 농구, 유도, 정구, 하키, 카누, 조정 등 7개 종목이다. 그 중에서도 단일팀과 관련해 이미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탁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탁구는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때 사상 첫 단일팀을 구성해 46일간 합숙훈련으로 호흡을 맞췄다. 결국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 과정은 ‘코리아’라는 영화로도 제작됐을 만큼 적어도 스포츠 남북교류에 관한 한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남북이 합동훈련으로 우의를 다지기도 했었다. 월간탁구DB.

이후에도 탁구는 꾸준히 남북교류를 위해 노력해왔다. 2002년 남한 부산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일팀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합동훈련으로 친선을 다졌고, 201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피스 앤드 스포츠컵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함께 복식조를 꾸려 유승민-김혁봉 조가 남자부 우승을, 김경아-김혜성 조가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피스 앤드 스포츠컵은 국제 스포츠 평화교류 비정부기구인 ‘평화와 스포츠(Peace and Sports)’가 제안했던 국제 친선 스포츠 대회다. 분쟁국 선수들이 함께 어울려 경기에 나서도록 하는 방식이었는데, 남북선수들이 힘을 합친 ‘코리아’의 복식조가 바로 그 첫 대회의 주인공이었다. 이미 남북 단일팀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데다 꾸준히 교류를 추진해온 탁구는 현재도 남북 선수들의 실력 차가 크지 않아 단일팀 구성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목으로 꼽힌다.
 

▲ 피스 앤드 스포츠컵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남북 선수들이다. 왼쪽부터 김경아(남), 김혜성(북), 김혁봉(북), 유승민(남). 월간탁구DB.

그에 따라 현재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 선수들 활약상에도 남다른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막 이틀이 지난 현재 남측 선수들이 남녀 모두 예선 3연승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북측 선수들은 남녀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여자팀이 3연승을 달리고 있는 반면 남자팀은 세 경기를 치른 현재 아직 첫 승을 올리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북한 여자팀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대만, 네덜란드,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와 함께 예선 C그룹에 편성된 북한은 첫 경기에서 중국계 리지에(세계20위)가 이끈 네덜란드를 3대 1, 두 번째 경기에서 쳉아이칭(세계8위)이 있는 대만을 3대 2, 그리고 세 번째 경기에서 체코를 3대 0으로 완파했다. 북한은 ITTF 팀랭킹 19위로 그룹 내에서 다섯 번째 시드지만 톱-시드 대만과 3번 시드 네덜란드를 모두 물리쳤다. 그룹 내 2번 시드이자 유럽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루마니아를 넘는다면 조 수위도 유력한 상황이다.
 

▲ (할름스타드=안성호 기자) 북한 여자선수들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강호들을 연파하며 조 수위를 달리고 있다. 에이스 김송이의 경기모습.

애초부터 북한 여자팀은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혔던 팀이다. 국내 경제여건으로 국제대회 출전이 많지 않아 세계랭킹은 낮지만 실력만큼은 세계 정상권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이번 대회에서 에이스 김송이(세계49위)와 차효심(세계161위), 김남해(세계276위) 등이 고르게 활약하며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대만전에서는 쳉아이칭에게 두 경기를 내줬지만 김송이와 차효심이 첸츠위(세계14위)를 잡았고, 김남해가 3단식에서 쳉시엔츠(세계43위)를 이기면서 승리했다.
 

▲ (할름스타드=안성호 기자) 랭킹은 낮지만 기량만큼은 세계 정상권이다. 단일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차효심의 경기모습.

그렇다면 이번 대회에서 남한과 북한 여자선수들이 맞대결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예선에서 남북 모두 조 1위를 차지한다면 결승에서만 만날 수 있다. 남측은 D그룹, 북측은 C그룹에 들어있는데, 8강에 직행하면 A그룹이나 B그룹 1위와 4강에서 만나도록 대진이 갈리기 때문이다. 만일 어느 팀이라도 조 수위를 하지 못할 경우는 추첨을 통해 16강전부터도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은 양측 모두 바라지 않는 경우다. 남자의 경우는 북한의 예선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나더라도 가능한 늦게 만나는 것이 최상이다. 서로를 응원하며, 올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반갑게 해후하길 바라는 선수들이다.
 

▲ (할름스타드=안성호 기자) 북한 남자팀은 아쉽게 아직 첫 승을 올리지 못했다. 최일의 경기모습이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일(한국시간) 홈페이지에 이번 할름스타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들의 참가를 지원했다고 소개했다. IOC는 중계권 수입에서 생긴 이윤으로 저개발 국가의 선수와 코치를 돕는 ‘올림픽 솔리더리티’ 기금을 조성하는데, 이번 대회 북한 선수들의 항공료, 숙박비 등을 해당 기금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IOC는 또한 이번 대회가 북한 선수들에게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첫 단계이자 궁극적으론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한 무대가 될 거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었던 IOC가 남북 탁구단일팀에 대해 갖고 있는 지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할름스타드=안성호 기자) 현재 남측 선수들은 남녀 모두 3연승을 달리고 있다. 1일 조 수위를 결정할 중요한 일전을 치른다. 선전을 다짐하는 남자대표 선수들.

2018 할름스타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이제 5월 첫 날, 개막 3일째 경기를 앞두고 있다. 남북 모두 매우 중요한 일전이 치러지는 날이다. 남측 여자팀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홍콩, 남자팀은 밤 열한 시경에 프랑스를 만난다. 남녀 모두 실질적인 조 수위 결정전으로 본선에서의 성패가 걸려있다. 북한 여자팀은 폴란드와 먼저 대전하고, 8강 직행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는 루마니아를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한다. 부디 최상의 성과로 함께 환호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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