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스티븐 킹 VS 리처드 바크만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그가 전화번호부를 써도 베스트셀러가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공한 작가다. 그의 대표작 몇 편을 접한 사람들은 그를 보통 스릴러나 호러같은 장르에 특화된 작가로 한정하지만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고전적 성장소설, 거기에 정통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 스티븐 킹


현대 미국 최고의 작가 스티븐 킹

영화 ‘캐리(1976)’, ‘샤이닝(1980)’, ‘스탠바이미(1986)’, ‘런닝맨(1987)’, ‘미져리(1990)’, ‘쇼생크탈출(1994)’, ‘그린마일(1999)’, ‘미스트(2007)’, ‘그것(2017)’ 등은 소설가 스티븐 킹(1947~)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는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물로 제작된 원작 소설을 가장 많이 집필한 작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킹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다. 

1947년 미국 메인주에서 태어난 킹의 아버지는 그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에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따라서 그가 태어나기 전에 입양되었던 형 데이비드와 킹의 양육은 어머니 혼자 책임져야 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항상 바쁘게 일해야 했지만 어린 아들이 도화지로 짧은 이야기책을 만들거나 만화를 베껴 보여주면 매우 기뻐하며 더 좋은 이야기를 써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킹이 소설을 쓸 때마다 25센트씩 용돈을 주었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소설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또한, 형 데이비드가 직접 만들었던 동네 신문 ‘데이브의 잡동사니’는 킹의 소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 여기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경험은 이후 킹이 많은 단편을 습작하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킹은 일찌감치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생계를 위해 영어 교사, 세탁공장 인부, 건물 경비원으로 일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집필해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캐리(1974)’는 사실 완성도 되기 전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작품이었다. 우연히 그의 아내가 이것을 발견해 읽고 조언과 격려를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버려지고 말았을 테지만 그는 결국 이 소설을 마무리 짓고 이 작품을 통해 스타 작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전업 작가가 된 킹을 바라보는 평론가들의 시선은 차가왔다. 가정에서는 광신도 어머니에게 학대당하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여고생 ‘캐리’가 초능력을 갖게 되고, 결국 졸업무도회에서 폭주하면서 무도회장과 마을 전체를 파괴시켜 버리고 만다는 줄거리의 소설 ‘캐리’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순수 문학이 아닌 대중 소설, 그 중에서도 공포 소설이라는 이유로 저평가가 이어진 것이다. 출판사 측에서는 킹의 이미지가 공포 소설가로 굳어질 것을 염려해 후속 작품은 다른 장르를 써보라고 권했지만 그는 연이어 공포물인 ‘살렘스 롯(1975)’, ‘샤이닝(1977)’을 발표했고 평론가들은 킹이 돈을 위해 글을 쓰는 저급한 작가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평단의 호평과 함께 등장한 리처드 바크만

소설 ‘분노(1977)’로 데뷔한 리처드 바크만은 뉴욕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젊은 시절, 해양 경비대에서 4년간 복무했고, 10년 동안 선원으로 일한 후에 뉴햄프셔에 정착해 작은 낙농 목장을 경영했다. 그곳에서 바크만은 낮에는 목장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곤 했는데 고질적인 불면증 덕분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첫 소설 ‘분노’는 찰리라는 고등학생이 교실로 총을 가지고 와서 수업 중이던 교사를 사살하고 학생들을 인질로 삼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킹의 데뷔작인 ‘캐리’ 만큼 판매 부수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평론가들로부터 ‘천재 작가가 나타났다’는 극찬을 받게 된다. 일부 독자들은 ‘스티븐 킹의 시대가 가고 리처드 바크만의 시대가 왔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2년에 뇌종양 수술을 받아야 했고, 1985년에는 전이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악성 희귀암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후에 아내가 발견해 출판한 ‘통제자들(1996)’까지 포함해 총 6권의 소설을 남기고 말이다. 

평론가들에 의해 바크만과 항상 비교됐던 킹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구역질 나는 더러운 인간, 그가 죽어버려 기쁘다”라고 말했다. 한 때 라이벌로 꼽히던 사이였다고는 해도 상대방의 죽음을 두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낸 스티븐은 최악의 인간 말종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킹을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뒤늦게 킹과 바크만이 동일인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난처해진 것은 킹은 비판하고, 바크만은 극찬했던 비평가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과정이다. 아무도 킹과 바크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때, 서점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바크만의 ‘시너(1984)’를 읽으며 그것이 킹이 쓴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홀로 정보를 찾아보다가 두 작가의 법적 대리인이 동일인임을 알게 된다. 서점 직원은 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고 뜻밖에도 킹은 직접 전화를 걸어와 그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천재라는 극찬을 받아온 심리 스릴러 소설가 리처드 바크만이 바로 자신라는 사실을 말이다.
 

▲ 너무도 미국적인 작가인 까닭일까? 국내 독자들에게 스티븐 킹은 그렇게 인기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원작인 영화 한 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스티븐 킹의 작품 중 가장 공포스럽다는 소설 ‘그것’의 동명 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운이 아니라 재능임을 증명하다

스티븐 킹은 왜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발표했을까? 
당시 미국 출판업계에서 작가들은 1년에 소설을 한 권만 출판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었다. 영화, TV 등의 영상제작용 작품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50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을 정도로 다작 작가인 킹에게 이는 족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킹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출판계의 분위기에 젖어들기보다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간혹 사람들은 그저 행운처럼 성공을 쟁취하기도 한다. 킹은 자신도 우연히, 운이 좋아서 유명 작가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런 의심을 품게 된 것에는 자신에게 혹평만 일삼는 평론가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킹은 자신이 ‘캐리’로 등단하기 전에 써놓았던 소설들을 다듬어서 ‘리처드 바크만’이란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발표했고, 쏟아지는 호평 속에서 자신이 소설가로 성공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비록 ‘리처드 버크만’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어 2만 8천 부 밖에 팔리지 않았던 소설 ‘시너’가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순간 28만 부나 팔리긴 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최대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겪는 갈등과 고민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것을 투영해 가장 격렬한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적 갈등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느냐에 따라 좌절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고, 또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라이벌로 삼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고, 결국 승리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더 견고히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월간탁구 2017년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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