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Sophy | 탁구와 철학(23) / 전대호

익스트림 스포츠

스포츠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서 나름의 대답을 제시해왔다. 이를테면 스포츠 이론을 구성해본 셈인데, 그 이론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은 승부, 몸, 놀이, 싸움 등이었다. 더 나아가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기 마련’이라는 원리도 언급한 바 있다. 이 원리에는 스포츠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삼아서 하는 활동이라는 뜻이 담겼다. 우리의 소재이자 큰 틀에서의 주제로 삼고 있는 ‘탁구’에 적용해 봐도 꽤 적절한 이론이지 싶다. 탁구는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놀이이자 싸움이요, 몸으로 가르는 승부니까 말이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가 짜는 이론의 틀을 어김없이 부수곤 한다. 어쩌면 그렇게 틀을 부수고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실의 고유한 운동, 진실의 진면목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든지 자기 이론을 뒤흔드는 반례와 마주치면,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마땅하다. 필자의 스포츠 이론을 위태롭게 만드는 반례가 있다. 이른바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rots’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극한 스포츠! 구체적인 종목들은 아주 다양하다. 수백 킬로미터 달리기, 모터사이클로 사막 횡단하기, 자동차 경주, 낙하산 메고 빌딩이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등등. 공통점은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카이다이빙처럼 비교적 덜 위험한 종목도 있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일부 종목, 예컨대 안전장비 없이 암벽이나 고공에 걸린 외줄 타기, 윙슈트 근접 비행(‘윙슈트’라는 특수한 옷을 입고 하늘다람쥐처럼 활공하면서 절벽이나 바위 따위를 스칠 듯이 지나가기) 등은 정말 목숨 걸고 하는 활동이다.

딘 포터Dean Potter라는 인물이 있다. 아니, 2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있었다라고 해야 옳겠다. 43세에 윙슈트 근접 비행 사고로 숨질 때까지, 포터는 숱하게 안전장비 없이 새로운 루트로 암벽을 타고 올라가 윙슈트 비행으로 내려왔고 맨몸으로 외줄 위를 걸어 천 길 낭떠러지를 건넜다. 한 마디로 목숨을 건 모험가였고, 실제로 그런 모험가답게 삶을 마무리했다.
 

▲ 스포츠의 통상적인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익스트림 스포츠. 종류도 다양하다.

중력을 상대한 딘 포터

이 특이한 인물을 우연히 알게 됐을 때, 필자는 나름의 스포츠 이론을 재점검할 필요를 느꼈다. 유튜브에서 본 포터의 얼굴은 요가 수행자처럼 맑았고, 붉은 절벽 꼭대기에서 윙슈트 차림으로 뛰어내리는 그의 모습은 필자의 말문을 막았다. 윙슈트를 입었다고 해도, 처음엔 곧장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다가 속도가 충분히 빨라지면, 비로소 공기의 저항을 강하게 받아 비행사는 절벽으로부터 멀어지며 마치 매처럼 날아간다.

필자가 꼽은 스포츠의 핵심 개념들은 포터의 목숨을 건 모험에도 적용될까? 당연히 몸은 그 모험에서도 필수요소다. 하지만 승부는 어떨까? 굳이 승부의 개념을 적용하자면, 모험에서 살아남는 것이 승리요 실패하여 죽는 것이 패배라고 해야 할 텐데, 이런 승리와 패배는 뭔가 이상하다. 일단, 패배가 문제다. 패배한 모험가는 이미 죽었으므로 패배를 알 리 없고 겪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것이 패배라면, 패배자 없는 패배다. 더구나 일반적인 스포츠에서 한 사람의 승리는 다른 사람의 패배를 의미하는데, 이 경우에 포터의 승리는 누구의 패배를 의미할까? 2015년 5월에 발생한 포터의 치명적 패배는 누구의 승리를 의미할까?

결국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기 마련이다.’라는 원칙까지 되짚어볼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딘 포터의 스포츠는 얼핏 사람을 상대했다고 보기 어려울 듯하다. 그의 모험이 어떤 상대와의 맞섬이었다면, 그 상대는 오히려 자연의 중력이었다고 해야 합당할 듯하다. 물론 포터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동영상도 많이 찍고 광고까지 찍었으므로 틀림없이 시청자들을 상대했다. 그러나 관중이 탁구선수의 맞상대일 수 없듯이, 시청자는 백척간두에 선 포터의 맞상대일 수 없다. 그럼 탁구선수의 맞상대가 다른 탁구선수이듯이, 포터의 맞상대는 다른 모험가였을까? 바꿔 말해, 포터는 다른 모험가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인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산, 높은 절벽 끝에 홀로 선 모험가를 상상해보라. 오늘로 삶을 마무리할 각오로 그가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순간, 과연 그의 눈앞에 경쟁자들이 떠오르겠는가? 아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 세계적인 모험가였던 딘 포터. 모험가답게 삶을 마무리했다.

결국엔 자기 자신과의 놀이요 싸움

칸트 철학의 주요 개념 중에 ‘숭고함’이라는 것이 있다. 어감에서는 어떤 성스러움이나 위대함이 연상되지만, 칸트 철학에서 숭고함의 의미는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에 가깝다.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사람,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우주 공간에 홀로 떠있는 사람, 끝없는 사막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숭고함이다. 나의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내 인생 전체가 휴지쪼가리와 같을 수 있음을 인정할 때, 어떤 대책으로도 수습할 수 없는 막막함에 직면할 때, 한마디로 나의 근본적인 유한성을 상기할 때 찾아오는 압도적인 감정, 분명 쾌감은 아닌데 어떤 쾌감보다도 소중한 감정, 그것이 숭고함이다. 필자는 딘 포터가 그 숭고함을 만끽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암벽등반과 윙슈트 비행이 숭고하다고 느낀다.

딘 포터의 모험이 틀림없이 스포츠이고, 그 스포츠에서 그의 상대는 자연도 아니고 다른 경쟁자들도 아니라면, 무릇 스포츠는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활동이라는 필자의 원리는 어쩌면 철회돼야 할 듯한데, 과연 그럴까? 이제껏 우리는 모험가의 맞상대가 모험가 자신일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았다. 어쩌면 포터의 모험은 포터 자신을 상대하는 스포츠였을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을 상대로 놀이하고 싸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의 원리는 유지될 수 있다. 포터가 포터를 상대하는 것도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포터가 마지막 윙슈트 비행을 위해 절벽에서 도약할 때 그의 눈앞에 그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 같지는 않다. 역시나 그저 허공이 그의 망막에 새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 허공이 바로 그의 진면목이라면 어떨까? 혹시 우리 각자의 참된 자아는 그런 허공과 같지 않을까? 칸트와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활동에서든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상대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스포츠도 결국엔 자기 자신과의 놀이요 싸움일 것이다.  (월간탁구 2017년 10월호)
 

▲ 스포츠도 결국엔 자기 자신과의 놀이요 싸움일 것이다. 임종훈(KGC인삼공사)의 포효. 월간탁구DB.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