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이수자 여자개인단식 4강 진출

1981년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벌어진 노비사드 제3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경기에서 한국의 에이스 이수자가 세계 4강에 오르는 큰일을 해냈다.

이수자는 1회전에서 소련의 안티나를 3대 1, 2회전에서 영국의 고든을 3대 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3회전에서는 중국의 센지얀핑을 3대 1로 물리쳐 16강전에 진출했다. 이어진 16강전에서 북한의 전형적인 수비수 이성숙을 만난 이수자는 톱스핀 드라이브와 속공으로 수비벽을 허물고 54분 만에 승리를 거뒀다. 첫 세트는 접전을 벌여 듀스까지 갔으나 촉진룰에 걸려 다급해진 이성숙의 수비미스로 23대 21 이수자 승, 이후 이수자는 2,3세트를 21대 17, 21대 10으로 무난히 이기고 8강전에 안착했다.

8강전 상대는 스카이서브를 구사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세계랭킹 4위였던 중국의 제보향이었다. 이수자는 이 세계적인 강호 제보향을 상대로 대한한 선전을 벌여 1,2세트를 21대 18, 21대 9로 선취했으나, 제 3,4세트는 10대 21, 19대 21로 져 2대 2 타이를 허용했다. 대접전 끝에 마지막 세트를 맞은 이수자는 침착한 플레이로 열전을 벌인 끝에 21대 17로 승리, 마침내 세계 4강에 올랐다. 이수자는 단체전 예선과 결승전에서 제보향과 두 차례의 대전에서 모두 졌으나 이번 세 번째 격돌에서 기어이 설욕전을 편 것이었다.

한국 선수가 세계대회 여자단식에서 준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73년 사라예보 대회에서 박미라가 3위를 차지한 이래 8년만의 일이었다. 준결승전에서는 비록 중국의 세계 최강 차오엔화에게 2대 3으로 역전패,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아깝게 물러서고 말았지만 이수자의 분투는 최고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북한과 중국 선수들을 잇 따라 물리치고 개인단식에게 유일하게 준결승전에 올랐던 이수자는 중국 국내 랭킹 1위 차오엔화와의 대결에서 마지막 세트에서 5차례나 듀스를 거듭하는 접전을 벌인 끝에 23대 25로 분루를 삼켜 대망의 결승진출을 놓쳤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 첫 출전한 이수자는 중국의 강호 제보향을 물리치고 중국선수 3명과 함께 4강을 이룸으로써 중국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지목받았던 것이다.

스코어가 말해주듯 이수자와 차오엔화와의 준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었다. 이수자는 첫 세트에서 차오엔화의 서브와 스피드에 눌려 14대 21로 내줬으나 곧 페이스를 회복, 강한 포어핸드 드라이브와 백핸드로 선제공격을 펴 2,3세트를 내리 따내 2대 1로 리드해나갔다. 그러나 4세트를 17대 21로 다시 내줘 2대 2로 타이를 허용한 이수자는 마지막 세트에서 침착한 플레이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중반까지 17대 13으로 리드, 승리를 굳히는 듯 했다.

그러나 서브권이 차오옌화에게 넘어간 후 승부는 다시 안개속이 되었다. 이수자가 계속 포인트를 잃어 20대 20으로 듀스를 이룬 것이었다. 이후 이수자는 두 번이나 어드밴티지를 먼저 잡았지만 마지막 순간 받아친 공이 네트에 걸리는 등 불운이 계속돼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23대 25, 승리의 여신은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외면했다. 참으로 아깝기 그지없는 패전이었다.

▲ 노비사드에서 스타로 떠오른 이수자. 중국의 제보향과 만난 8강전에서 백핸드로 공격하고 있다.


아수자의 선전 외에 황남숙은 2회전에서, 안해숙은 3회전에서 탈락했으며, 김경자도 4회전에서 모두 중국 선수들에게 패했다. 한편 남자 단식에서는 박이희가 1회전에서 호주의 핀케위치를 3대 0, 2회전에서 북한의 홍철을 3대 0, 다시 3회전에서는 유고의 칼리닉마져 3대 1로 제압, 16강 대열에 발돋음 했다. 한국 남자선수가 세계대회 개인전에서 16강에 도약한 것은 그 당시가 처음이었다.

이날 박이희는 북한의 홍철을 맞아 이질러버로 변칙수비를 펼치면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어 1세트를 21대 16으로 가볍게 요리했다. 사기가 오른 박이희는 2세트에서도 톱스핀을 걸며 추격하는 홍을 착실한 커트플레이를 앞세워 21대 11로 따돌리고 승리를 잡았으며,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한 홍에게 강연타를 퍼부어 21대 12로 간단히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박이희의 선전도 거기까지였고 8강 진출은 좌절됐다. 남자단식에서 북한은 6명, 일본은 7명이 각각 출전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 남자단식 순위

① 궈웨화(중국) ② 차이전화(중국) ③ 뱅트슨(스웨덴) ④ 슈벡(유고)

 

□ 여자단식 순위

① 통링(중국) ② 차오옌화(중국) ③ 이수자(한국) ④ 장덕영(중국)

 

여자개인복식 황남숙.안해숙 조 3위 획득

여자 개인복식에서는 황남숙.안해숙 조가 1회전에서 말레이시아의 고수홍.쇼파풍 조를 3대 0, 2회전에서 인도의 메타.사로케 조를 3대 0, 3회전(8강) 준준결승전에서 북한의 이성숙.김경선 조와 풀게임의 대격전 끝에 3대 2(-19, 19, -14, 16, 11)로 역전승,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이어진 준결승전에서는 중국의 장덕영.차오옌화 조에 1대 3(18, -19, -17, -15)으로 역전패해 아깝게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수자.김경자 조도 8강전까지는 진출했으나 중국의 통링.푸퀴후안 조에게 0대 3(-18, -15, -10)으로 패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편 남자 개인복식과 혼합복식에서도 별다른 성과 없이 1,2회전에서 모두 탈락해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 이수자 황남숙 복식조의 경기장면.

 

□ 남자복식 순위

① 리첸시.차이전화(중국)

② 시사이케.유엔우아(중국)

③ 슈벡.스테판칙(유고) / 세크래탱.비로세(프랑스)

 

□ 여자복식 순위

① 장덕영.차오옌화(중국)

② 통링.푸퀴후안(중국)

③ 안해숙.황남숙(한국) / 후앙준쿤.안귀리(중국)

 

□ 혼합복식 순위

① 시샤이케.후앙준쿤(중국)

② 센신후아.안귀리(중국)

③ 후앙리앙.푸퀴후안(중국) / 슈벡.바티니크(유고)

 

세계적 스타로 부상한 이수자

이수자. 당시 나이 20세…. 노비사드 세계탁구선수권권대회는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한국의 한 선수를 세계적 스타로 탄생시켰다.

세계선수권대회 처녀 출전의 이수자가 당시 노비사드에서 거둔 전과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여자단체전 예선 1회전에서 서독에 불의의 패전을 당해 먹구름 속에 휩싸였던 한국 팀을 결승전까지 구사일생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이수자였다.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는데 주역이었고, 북한과의 대결에서도 박영순, 이성숙을 꺾어 한국 팀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수자는 아직 한국 탁구의 대들보라는 인식에서 얼마를 더 앞서지 못했다.

이수자의 성과가 보다 강렬한 빛을 발한 것은 개인전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3회전에서 이수자는 중국의 센지얀핑을 통쾌하게 3대 1로 눌러버렸다. 당시 대회에서 중국 선수를 꺾기는 모든 참가국을 통틀어 이때의 이수자가 처음이었다. 4회전에서는 북한의 이성숙을 3대 1로 물리쳤고, 이어진 준준결승전에서는 또다시 중국의 제보향을 3대 2로 제치고 세계 4강에 올랐다.

세계 최상위 랭킹의 이성숙, 제보향을 잇따라 물리친 이수자의 활약은 일면 애처롭기까지 했다. 8강에 오른 선수는 중국이 6명이었고 나머지 2명이 이수자와 북한의 박영순이었다. 6명이나 무더기로 준준결승에 진출한 중국의 인해전술 속에서 유일하게 4강 진출권을 획득한 이수자의 외로움은 상상의 차원을 넘은 것이었으리라.

준결승에서 이수자는 중국 국내 랭킹 1위의 차오옌화에 2대 3으로 분패, 결승에 오를 기회에 놓쳤다. 그러나 이수자는 이 게임을 통해서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말끔히 씻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술회했다. 한국으로서는 바로 이것이 제일 큰 수확이었다. 중국의 벽을 무너뜨릴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사실은 당시의 한국 탁구에 더없이 밝은 빛을 던져준 것이다. 당시 7개 종목을 모두 휩쓸어간 중국의 총감독 이부영도 귀국 직후 환영대회에서 한국의 이수자를 “완벽한 셰이크 핸더로서 속공타법이 좋은 훌륭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한다.

 

정상탈환 가능성 입증

한국은 노비사드 제36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비록 사라예보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당초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5차례의 남북대결에서 모두 승리, 대북 우위를 입증했다. 특히 나이어린 이수자, 황남숙, 김경자, 안해숙 등이 여자단체전 준우승과 함께 개인전 동메달 2개를 따낸 것은 한국탁구의 앞날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가능성도 「卓球人海」의 중국벽을 뚫지 않고는 결코 날개를 펼 수 없다는 점을 아울러 깨닫게 했다.

한국은 남녀 단체전에서 중국과 맞서 모두 패했고 남녀 개인전에서는 8전 2승 6패란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중 이수자만이 중국의 센지얀핑과 제보향을 꺾어 한국 탁구의 1인자임을 과시했다. 더욱이 이수자는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중국 국내랭킹 1위인 차오옌화와 마지막 5세트에서 5차례의 듀스를 거듭할 만큼 대등한 게임을 펼쳤다.

당초부터 한국은 중국벽을 허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치 않았다. 그 전해 스칸디나이바 오픈대회에서 한국 탁구계는 스스로 수준을 저울지리해본 결과 일본, 북한은 능히 압도할 수 있으나 중국만은 힘겨우리라고 판단했었다. 그것은 이수자, 김경자, 황남숙, 안해숙 등으로 이어지는 선수층이 공격수비형을 골고루 갖춰 이상적이긴 하지만 사라예보 당시보다 전력이 떨어졌음을 느꼈던 것이다. 자연히 중국 콤플렉스도 문제였으며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중국은 남녀단체전 개인전 7개 전 종목을 모두 휩쓸 만큼 강했다. 한때 세계탁구계는 그들의 이질러버 위력만을 눈여겨봤으나 중국선수단은 공격도 수비도 함께 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에 능했다. 또 체력과 기량 양면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섰던 것이다. 한국 탁구계는 공격형과 수비형의 조화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약점이 있었다. 여자단체전 1회전에서 한국 셰이크핸드의 공격형 이수자가 유럽에 약하다는 징크스 때문에 기용하지 않았다가 서독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는 곤욕을 치른 것이 그 좋은 예였다.

한편 남자선수들도 서독에서 활약하고 있던 박이희가 북한 선수를 꺾고 16강으로 도약한 것, 또 스웨덴, 서독, 프랑스 선수들을 제압한 것을 1969년 뮌헨 제30회 세계선수권대회 이래 침체에 빠졌던 남자탁구계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경사였다. 그 같은 결과에 따라 많은 탁구전문가들은 여자탁구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자탁구의 육성에도 많은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를 내놓기도 했다.

또 하나 한국탁구가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은 유럽의 성장이었다. 당시까지 세계탁구는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세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나 서독, 헝가리,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의 탁구실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는 사실이었다. 50년대 초반부터 역대 대회를 거의 석권하다시피 한 탁구강국 일본이 남자단체전에서만 3위를 차지했을 뿐 여자단체전에서 9위를 하는 등 전멸한 이변이 그 같은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스포츠에서 성과는 투자에 비례한다고 한다. 한국선수단이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거둔 것도 500일 강화훈련 등 각고의 결실이라고 모든 탁구인들은 평가했다.

한편 당시 대회 기간 중 경기에 못지않게 격렬한 스포츠 외교전이 벌어진 노비사드의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한국은 아시아탁구연합의 고립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한상국 회의대표의 활약으로 국제연맹 기술위원으로 박성인 총감독이 선임됨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또 다른 성과를 얻었다.

 

노비사드 세계대회 참가 선수단 개선

유고 노비사드에서 거행된 제3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전 준우승, 여자단복식 3위를 차지하면서 5차례 남북대결을 모두 승리로 이끈 한국대표 선수단이 1981년 5월 4일 김포공항으로 개선, 조상호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500여 명의 체육인, 보도진, 그리고 친지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공항 광장에서 베푼 환영식에 참석, 문교부 장관 등 각계에서 보내온 축하의 꽃다발에 묻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경태 단장의 귀국 보고에 이어 조상호 대한체육회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비록 사라예보 대회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으나 이번 쾌거는 한국이 세계 탁구계의 정상임을 재확인하고 민간 외교 면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탁구인구를 넓혀 세계정상 탈환에 더욱 매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 뒤를 이어 최원석 탁구협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응원하는 동포 한 사람도 없는 공산권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국민 여러분의 성원 덕택”이라고 전제하고 “탁구인들은 가일층 분발, 83년도 도쿄 세계대회에서는 기필코 중국을 제압, 정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수단은 환영식이 끝난 뒤 9대의 오픈카에 분승 5.16 광장 ~ 서소문 ~ 동대문 ~ 종로를 거쳐 무교동 대한체육회까지 화려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환영 퍼레이드가 끝난 뒤에는 무교동 대한체육회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했다.

▲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위를 선양한 이수자 선수 등을 청와대로 초청, 훈장을 수여했다.

 

전 대통령 청와대 초청 만찬

전두환 당신 대통령은 유고 노비사드에서 개최한 제3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개선한 선수단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 훈장을 수여하고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만찬을 베풀어 치하했다. 이 자리에는 최원석 탁구협회장, 이규호 문교부 장관, 김용휘 총무처 장관, 조상호 대한체육회장이 배석했다. 체육훈장은 다음과 같이 포상되었다.

 

□ 이수장 선수 : 체육훈장 거상장

□ 김경태 단장 : 체육훈장 기린장

□ 한상국 회의대표 : 체육훈장 기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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