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회 전국체육대회 탁구경기 여자일반부 개인단식

“좋아요!” 노장은 우승 소감을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100회 대회고 한데 너무 단답형 아니냐는 기자의 청에 덧붙인다는 게 “아마도 마지막일 체전을 우승으로 끝내서 좋다.” 정도가 다였다.

수원시청의 문현정(35)이 서울 서초종합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탁구경기에서 여자일반부 개인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북대표 유주화(장수군청), 서울대표 송마음(금천구청), 제주대표 김하영(대한항공), 인천대표 김별님(포스코에너지)을 차례차례 이겼다. 7일 오전 첫 경기로 열린 김별님과의 결승전이 금메달 길목 최대 고비였는데, 풀-게임접전 끝에 3대 2(14-12, 11-9, 9-11, 2-11, 11-9)로 승리했다.
 

▲ (서초=안성호 기자) 현역 최고참 문현정이 여자일반부 단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실업 17년차 문현정은 국내 여자탁구 최고참 현역 선수다. 2003년에 실업무대에 진출, 명문 삼성생명(12년)과 미래에셋대우(3년)에서 15년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작년 시‧군청 무대로 적을 옮겼다. 안산시청에서 1년을 뛰었고, 올해 다시 수원시청으로 옮겼다. 오랜 선수생활만큼이나 각종 대회에서 다양한 우승 경력을 쌓은 강호다.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서도 많은 활약을 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문현정의 금메달을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오른손 펜 홀더 전형이다. 강하고 정확한 임팩트와 파워 있는 드라이브가 강점이지만, 점점 빨라지는 현대 탁구에서 한쪽 코스가 자주 비워지는 단면 펜 홀더의 약점이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된 까닭이었다. 게다가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따른 체력도 문제였다. 바꿔 말하자면 문현정의 금메달은 ‘이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상을 넘어선,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던 셈이다.
 

▲ (서초=안성호 기자) 문현정이 많은 이들의 예상을 넘어 펜 홀더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런데 문현정은 펜 홀더의 ‘희소성’을 오히려 우승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제 실업무대에서 펜 홀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실업뿐만이 아니라 전 계층이 그럴 것이다. 후배들이 어릴 때부터 펜 홀더와 거의 싸워보지 못하다 보니 적응력이 떨어진다. 공략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며 웃었다.

사실 문현정이 보여주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대통령기 대회도 우승했다. 작년 대통령기 역시 우승했으니 2연패였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시군청팀으로 옮긴 이후로도 기업팀 강자들을 끊임없이 괴롭게 하고 있다. 단순히 희소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문현정은 ‘마음가짐’을 또 하나 이유로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은 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시합한다. 이기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즐길 줄을 알게 됐달까! 편한 마음으로 하다 보니 공도 잘 보인다. 회전이 덜한 폴리볼에는 힘도 더 잘 실린다.”고 말했다.
 

▲ (서초=안성호 기자) 여자단식 시상식 모습이다. 은메달은 포스코에너지의 김별님. 시상자는 박형순 경기도탁구협회 회장이다.

여유? 또는 관록은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문현정은 성과를 굳이 앞세우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다. 대통령기나 체전이나 각 팀당 한 명씩만 나와 경기 수가 많지 않은 토너먼트로 진행되니까 우승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짧게 몇 시합에 집중했다. 게다가 이번 대회에는 대표 선수들도 몇 명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 차치하더라도 문현정의 금메달이 한국 여자탁구에 시사해주는 바는 적지 않다. 최근 한국탁구는 국제무대에서 갈수록 존재감이 작아지고 있다. 문현정이 현역 최고참 펜 홀더 선수로서 자신의 금메달을 아주 달가워만은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 때문일까. 문현정은 후배들을 향한 아픈 충고고 잊지 않았다. “한국탁구는 발로 치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며 강력한 결정구로 승부를 냈다. 지금은 가운데 서서 이도저도 아닌 탁구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색깔을 찾아야 한다.”
 

▲ (서초=안성호 기자) 하는 동안만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현정이다. 제100회 전국체전 여자일반부 단식 금메달리스트다.

이왕에 대표에도 다시 도전할 의향은 없는지를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간절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는 하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의지까지는 갖고 있지 못하다. 후배들이 좀 더 강한 열정을 갖고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올해 전국체육대회 탁구경기 여자일반부 개인단식 금메달은 100회 체전이라는 회차를 떠나 보다 특별한 메달로 기억될 것이다. 현역 최고참이 펜 홀더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으로 후배들에게 또 한 번 강한 자극을 남겼다. 문현정은 내년까지 수원시청에 계약돼 있다. 내년 체전은 안산시청이 나올 차례여서 체전은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래도 문현정은 “언제까지 라켓을 잡을지는 모르지만 하는 동안만은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후배들도 이 까다로운 선배의 경기력을 넘어서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장의 품격이 100회째 체전의 금메달을 더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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