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Sophy | 탁구와 철학(5) / 글_전대호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뇌 속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산다
 
세상에 자동차가 처음 생겨날 당시 많은 사람들은 운전이 워낙 어려운 기술이어서 소수 전문가만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무인 운전 시스템이 실용화를 목전에 둔 시대가 됐지만, 따지고 보면 운전은 그리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체스 게임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긴 것은 한참 전인 반면, 운전하는 기계는 이제야 개발 중이라는 점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운전자는 교통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손과 발을 적절하게 놀려야 하고, 위험한 돌발 사건에 대처할 준비를 항상 갖춰야 하고, 유사시 신속하게 반응해야 한다. 고성능의 컴퓨터와 효율적인 프로그램과 정밀한 기계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과제다.
 

▲ 우리의 뇌 속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산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운전은 식은 죽 먹기다.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운전하면서 운전에 신경을 쓰는 경우조차 드물다. 라디오 음악에 귀를 기울이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전화로 누군가와 말다툼도 한다. 그러다가도 신호등이나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빨갛게 빛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차를 세운다.
  물론 누구나 처음 운전을 배울 때는 그렇지 않았다. 어색한 동작으로 공들여 핸들을 돌리고 신경 써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점차 운전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공들이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단계에 이른다. 마치 손발이 자동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내가 나의 운전 동작을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어진다. 운전이라는 과제의 수행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운전을 예로 들었지만, 걷기 동작도 마찬가지다. 패션모델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자신의 걷기 동작을 분석하고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그냥, 자연스럽고 편하게 걷는다. ‘왼발을 내디디면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내디딘 왼발에 몸무게를 실음과 동시에 오른 무릎을 굽히면서 오른발을 들어 왼발 앞으로 내디디면서 다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라는 식의 절차를 암기하여 곱씹으면서 걷는 사람은 없다. 첨단 보행 로봇이 이제야 엉성하게 수행하는 그 복잡한 과제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완수한다.
  심리학과 뇌 과학에서는 이런 무의식적 과제 수행 능력을 흔히 ‘좀비’에 비유한다. 우리의 뇌 속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산다. 거의 다 우리가 키운 좀비들이다. 예컨대 우리는 ‘운전 좀비’와 ‘보행 좀비’ 덕분에 딴 생각에 몰두하면서도 능숙하게 운전하고 보행할 수 있다. ‘좀비’의 반대 짝은 ‘의식’이다. 전혀 낯선 곳에서 전혀 낯선 차량을 운전할 때, 또는 무릎이나 발목을 다쳐 발을 내디딜 때마다 통증이 느껴질 때, 우리의 의식은 환히 켜진다. 애써 동작을 이리저리 수정하면서 공들여 그 결과를 살피고 분석한다. 평소에 좀비들에게 맡겼던 과제를 의식이 회수하여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 연습은 뇌 속에 좀비가 깃들게 하는 과정인 셈이다.

최고의 사냥개들을 키워라!
 
대체 좀비와 스포츠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스포츠야말로 좀비들이 대활약하는 무대다. 탁구선수의 뇌 속에는 ‘드라이브 좀비’, ‘커트 좀비’, ‘푸시 좀비’, ‘스매싱 좀비’, 각종 ‘서브 좀비들’이 산다. 시합 중에 자신의 드라이브 동작에 신경을 쓰는 탁구선수가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 선수는 시합에서 질 확률이 매우 높다. 드라이브를 비롯한 온갖 동작들을 좀비들에게 맡기고, 의식은 더 높은 차원의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탁구선수가 단순한 포어핸드 스트로크를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서 연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 속에 ‘포어핸드 좀비’가 깃들게 하기 위해서다. 그 동작이 뇌를 거쳐 온몸에 스며들어서 필요할 경우 자동으로 나오게 만들기 위해서다.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마추어들은 탁구 시합을 하면서 흔히 말을 주고받는다. 만일 상대가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여 당신을 궁지로 몰아간다면, 당신이 시도해볼 만한 꼼수가 하나 있다. 상대의 서브를 칭찬하라. 그러면서 그 동작의 세부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물어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동작에 신경 쓰게 만들어라. 이를테면 ‘우와, 끝내주네. 팔꿈치하고 손목의 각도를 어떻게 잡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당신의 꼼수가 먹히면, 상대는 자신의 동작에 신경을 쓰느라 실수를 연발할 것이다. 좀비에게 맡길 일에 의식이 끼어들면, 일을 망치기 십상이다. ‘시합은 연습처럼’이라는 구호를 상기하자.
 

▲ 포수가 마침내 싸늘한 결정타를 날리는 순간, 스포츠는 감동을 넘어 전율을 일으킨다.

  사냥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필자는 좀비와 의식을 '사냥개와 포수'에 비유하면 적절하리라고 생각한다. 사냥개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사냥감을 뒤쫓는 포수는 없다.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리는 것, 멧돼지를 발견하고 맹렬하게 짖으면서 뒤쫓는 것, 앞다리든 뒷다리든 이빨에 닿는 대로 물고 버티는 것은 사냥개의 몫이다. 이 일을 포수가 하겠다고 나서면, 사냥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포수의 몫은 사냥개들을 푸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단 한방의 냉정한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다.
  연습이 부족한 탁구선수는 형편없는 사냥개 서너 마리만 대동한 포수와 같다. 사냥이 잘 될 리가 없다. 반대로 피땀 나는 연습을 충분히 소화한 탁구선수는 최고의 사냥개들을 수두룩하게 거느린 포수다. 그런 선수는 시합이 시작되면 개들을 풀어놓고(세부 동작들을 좀비들에게 맡기고) 차분하게 전체 상황을 굽어보면서(의식을 환히 켜서) 결정적 기회를 노린다. 멧돼지가 아니라 호랑이도 잡을 만한 사냥 팀이 한 선수 안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포수가 뒤이어 사냥감에 접근하기도 전에 사냥개들이 사냥을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을까? 아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싶다. 실제로 탁구 시합에서는 특히 신인 선수에게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듯하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니 시합이 끝났고 내가 이겼더라.’는 식의 고백은 스포츠팬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스포츠의 진정한 감동은 사냥개와 포수의 협력에서 나온다. 고된 훈련으로 키운 사냥개들이 앞서 나가 뜨거운 땀을 흘리는 동안 한걸음 뒤에서 차분하게 기다려온 포수가 마침내 싸늘한 결정타를 날리는 순간, 스포츠는 감동을 넘어 전율을 일으킨다. (월간탁구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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